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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하며 활력 되찾아… 새로 배우는 인생 [우당탕탕 할아버지 육아일기]

by seohyun56 2025. 9. 10.

육아하며 활력 되찾아… 새로 배우는 인생 [우당탕탕 할아버지 육아일기③]



조부모, 사회적 돌봄 주체 명문화… 새로운 자아·긍정적 효과↑

道 관계자 “개인 넘어 가정까지 행복한 돌봄… 지원 확대할 것”



우당탕탕 할아버지 육아일기③ 초보 육아 할부지의 성장기

“처음엔 막막… 이젠 육아 베테랑, 자아실현 도와”



인천광역시의 김희석씨가 손자 김지후군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환하게 웃고있다. 박귀빈 기자



“손주 지후를 돌보면서 저도 함께 성장하는 기분입니다.”



4년 전 맞벌이하는 딸 부부를 대신해 손자 김지후군(4)을 키우게 된 김희석씨(64·인천 계양구). 퇴직 후 한동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그의 하루는 이제 육아로 시작해 육아로 끝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린이집 등원부터, 밥챙기기, 양치, 목욕 등의 돌봄을 맡고, 주말이면 키즈카페와 놀이터로 함께 나들이를 나선다.



기저귀도 제대로 못 갈던 ‘초보 할아버지’는 이제 ‘육아 베테랑’이 됐고, 말끝마다 “사랑해”를 붙이는 다정한 할아버지가 됐다. 무뚝뚝한 아버지로만 살아온 그는 손주를 통해 다시 감정을 배워가고 있다. 김씨는 지후와 함께하는 순간이 단순한 돌봄을 넘어, 퇴직 이후 잃어가던 활력을 되찾는 시간이라 말한다. 그는 “예전엔 하루가 길고 지루하기만 했는데, 아이와 함께 뛰고 웃으니까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와 함께하면서 삶의 리듬도 체력도 되살아났지만, 늘어나는 생활비 부담에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김씨는 “손주가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지만 생활비만으로는 빠듯하다”며 “아이의 웃는 얼굴 하나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동구에 사는 박창수씨(59·가명)도 마찬가지다. 7년 전 아들의 이혼으로 세 손주를 맡게 된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가며 홀로 육아를 감당해왔다. 당시 네살, 여덟살이던 아이들은 어느덧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됐고, 갓난아이였던 막내는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요즘 사춘기에 접어든 손주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많이 참고, 기다리고, 표현하는 법을 익혀가는 중이다. 박씨는 “점점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예전엔 몰랐던 감정을 느끼고,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퇴직을 1~2년 앞둔 그는 여전히 생계를 이어가며 육아까지 병행하고 있다. 아들로부터 매월 용돈을 받지만, 세 아이의 생활비까지 감당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경제적 부담과 불안에 매일같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박씨는 “사실상 아이를 전담해 키우는데 조부모라는 이유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 힘들다”며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고 했다.



인천광역시의 김희석씨가 손자 김지후군의 이를 닦아주며 양치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손주 돌봄에 나선 할아버지들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과정에서 정서적 안정과 자존감 형성 등에 긍정적인 변화를 준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만, 손주를 돌보면서 발생하는 정서적 안정과 건강 회복 등 긍정적인 효과와는 별개로, 조부모 돌봄에 대한 제도적 지원 등이 없어 조부모들은 양육 과정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양육을 전담하고 있음에도 법적 보호자가 아니란 이유로 각종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아동 수당이나 아이돌봄 서비스 등도 정작 돌봄을 맡고 있는 조부모는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다.



지역 안팎에선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조부모 육아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역할을 ‘사적 희생’으로만 남겨둘 것이 아닌, ‘공적 책임’으로 전환해 사회가 함께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용호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년기 육아는 자기 실현과 건강 회복의 통로가 될 수 있으나, 경제적·심리적 부담까지 함께 떠안는 구조에선 쉽게 지칠 수 있다”며 “수당이나 맞춤형 교육, 심리지원 등과 같은 제도적 뒤받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주 돌보는 조부모 누구나 지원… 정책 제도화 ‘시동’



맞벌이 부부 600만 시대. 자녀 양육의 부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조부모가 손주의 양육을 전담하는 ‘황혼육아’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오랜 시간 세대를 이어온 가족의 따뜻한 품은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양육에 대한 금전적, 신체적 부담을 고스란히 할아버지·할머니들가 짊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움직임도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자녀의 맞벌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꺼이 손주를 품에 안았지만 홀로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육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체력적 한계와 경제적 부담에 부딪히는 ‘황혼육아’ 가정이 늘며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최근 경기, 서울, 충남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 등은 조부모가 손자녀를 돌보는 가정에 월 일정 금액의 양육비를 지원하는 내용의 ‘조부모 돌봄수당’을 신설, 운영하며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현재 경기도는 중위소득 150% 이하 가정에서 부모의 맞벌이·다자녀 등 다양한 이유로 생후 24~36개월 아동을 보육하는 조부모와 4촌 이내 친인척에 대해 돌봄 수당을 지원하는 ‘경기도형 가족돌봄수당’을 시행 중이다. 아동 1인당 월 30만~60만원 수준의 돌봄수당을 지급하며, 2026년에는 올 하반기(14개)보다 13개 늘어난 27개 시군이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서울특별시는 2세 영아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월 30만원의 돌봄비를 지원하는 ‘서울형 아이돌봄비’ 사업을 운영 중이다. 충청남도의 경우 지원 내용은 타 시군과 비슷한 수준인 반면 소득과 관계없이 신청할 수 있다.



지자체는 육아 조력자를 위한 아동 돌봄 수당을 다양하게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조부모 돌봄수당’은 지원 기간이 고작 1년인 데다 전국적인 제도가 아닌 탓에 대부분의 조부모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의 ‘2024년 전국보육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동거 친·외조부모 및 비동거 친·외조부) 중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원받는 비율은 36%에 불과하다. 이는 절반에 가까운 49.1%가 사실상 무보상으로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천광역시의 경우 조부모 돌봄 수당 도입을 검토했지만 재정 여력 부족과 국가 단위의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정책 도입을 보류하고 있어 많은 조부모가 아이 돌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정책 지원도 미비하다.



채은경 인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부장은 “인천시는 조부모 관련 수당보단, 건강한 노년을 보내도록 돕는 ‘건강수명’ 중심의 정책이 논의 중”이라며 “기초연금 및 요양보호 예산이 전체 복제 예산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조부모 관련 수당 등) 새로운 수당 도입에는 재정적 부담이 큰 상황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조부모 육아 지원 제도화…‘황혼육아 지원법’ 등장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조부모 육아 지원을 제도화하기 위한 움직임은 국회에서도 서서히 시작됐다. 지난 6월24일 발의된 ‘황혼육아 지원법’(아이돌봄 지원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개정안은 ‘아이돌봄 지원법’ 지원 대상을 부모 외에 4촌 이내 혈족 및 인척까지 확대, 조부모의 육아를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조부모가 단순한 가족 구성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돌봄의 중요한 주체임을 명문화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또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시행하던 조부모 돌봄수당이나 교육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지원 대상, 금액, 기간 등을 일률화해 지원의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황혼육아’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나 가족에서 벗어나 사회적 돌봄의 영역으로 확대하고 양육 당사자인 조부모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당 법을 대표 발의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장겸 의원(국민의힘)은 “현행법은 지자체가 아이를 직접 돌볼 여력이 부족한 부모를 위해 아이돌봄사 등 전문 인력을 활용한 아이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부모는 낯선 타인에게 아이를 맡기는 데에 대한 불안감과 돌봄서비스 인력 부족으로 인한 장기간 대기 불편 때문에 아이돌봄 서비스보다 조부모에게 돌봄을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조부모가 손자녀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급증하고 있지만, 현행법에는 조부모에게 수당을 지급할 근거가 부족하다”며 “황혼육아는 특정 가정이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범국가적 과제가 됐다. 부모의 양육 부담을 완화하고 황혼육아를 사회적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하며 저출산 대응과 일·가정 양립 실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책 너머의 가치…‘사회 활동’이자 ‘개인 건강’ 위한 황혼육아



황혼육아는 중노년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에 사회적으로 장려되는 부분도 있다. 특히 남성 노인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주로 사회활동 참여와 역할 재정립이라는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은퇴 후 사회적 역할이 축소돼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 남성 노인들에게 손주 돌봄은 새로운 일상이자 중요한 사회활동이라는 의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손자녀 양육과 고령자의 건강, 인지기능 및 삶의 만족도에 관한 연구’(2022)에 따르면 손주를 양육한 조부모의 우울감 점수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낮았다. 또 손주를 돌보며 자녀와의 관계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남성 노인에게 정서적 지지와 가족 내 유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오랜 기간 가정 내 육아는 대부분 여성의 역할로 여겨져 왔으나 남성 노인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정서적인 교류를 확대하는 것은 고정된 성 역할을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은퇴로 상실감을 겪기 쉬운 남성 노인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함과 동시에 자존감을 높이는 긍정적인 경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손주와 함께 산책하거나 놀아주는 등 신체활동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체력도 증진돼 노년기 신체 건강과 활동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동시에 손주와의 상호작용이 노인의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개인을 넘어 가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황혼육아에 뛰어드는 노인이 증가함에 발맞춰 경기도는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사회적 돌봄의 책임을 이행한다는 방침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더 많은 도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경기형 가족돌봄수당’ 참여 지자체를 지난해보다 올해 더 확대, 시행 중”이라며 “올 상반기에는 17개 시·군이, 하반기에는 14개 시·군이 함께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27개 시·군에서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별기획팀